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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30일 월요일

낙관주의와 현실주의를 함께 활용하라 - 승완

짐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총에 맞아 부상을 당한 채로 적군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그는 모진 수용소 생활을 견뎌내고 1973년 풀려났습니다. 무려 8년간의 독방 생활과 수십 번의 혹독한 고문, 그리고 전쟁 포로의 권리도 보장 받지 못한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살아남은 것입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인 짐 콜린스는 스톡데일이 쓴 책을 읽으며 ‘운명의 불확실성, 체포한 사람들의 냉혹한 행동 등’으로 인해 침통해졌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내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침통한 느낌이 든다면, 실제로 그곳에 있었고 이야기의 끝도 알지 못하던 그는 도대체 어떻게 그 상황을 견뎌 냈을까?” 이에 대해 스톡데일은 콜린스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야기의 끝에 대한 믿음을 잃은 적이 없었어요. 나는 거기서 풀려날 거라는 희망을 추호도 의심한 적이 없거니와, 한 걸음 더 나아가 결국에는 성공하여 그 경험을, 돌이켜 보아도 바꾸지 않을 내 생애의 전기로 전환시키고 말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곤 했습니다.”

이런 대답은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성공을 믿는다는 점에서 낙관주의입니다. 그렇다면 지옥과 같은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낙관주의자일까요? 스톡데일에 따르면 아닙니다. 그는 포로 생활을 “견뎌 내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였습니까?”라는 콜린스의 질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낙관주의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나갈 거야’라고 말하던 사람들 말입니다. 그러다가 크리스마스가 오고 크리스마스가 갑니다. 그러면 그들은 ‘부활절까지는 나갈 거야’하고 말합니다. 그리고 부활절이 오고 다시 부활절이 가지요. 다음에는 추수감사절, 그리고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고대합니다. 그러다가 상심해서 죽지요.”

이 말 속에는 낙관주의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현재 상황과 정보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현실주의 혹은 비판적 사고입니다. 콜린스의 질문에 대한 스톡데일의 두 번의 답변은 상반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전쟁포로 수용소 같은 극심한 역경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스톡데일과 콜린스는 낙관주의(긍정적 사고)와 현실주의(비판적 사고)를 함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결국엔 성공할 거라는 믿음을 잃지 않는 동시에,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한다.”

이것은 역설적인 심리 패턴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콜린스는 이런 특성을 ‘스톡데일 패러독스’라고 부릅니다. 긍정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는 개념적으로 대극에 위치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 사람들을 낙관주의자와 현실주의자로 나누기도 합니다. 하지만 낙관주의와 현실주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현실을 담지 않은 꿈은 몽상이고, 꿈이 없는 현실은 황무지입니다. 낙관주의에 빠진 사람은 포기하기 쉽고, 현실에 빠진 사람은 꿈을 꾸지 못합니다. 

낙관주의와 현재주의는 서로를 보완할 수 있고, 긍정적 사고와 비판적 사고는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고 목표 실현을 믿는 낙관주의가 혹독한 현실과 험난한 과정을 견딜 수 있도록 힘을 주고, 현재를 냉철하게 파악하고 안 좋은 상황을 대비하는 현실적 비판주의가 이상을 실현하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스톡데일이 강조한 것처럼 “결국에는 성공할 거라는 믿음, 결단코 실패할 리 없다는 믿음과 그게 무엇이든 눈앞에 닥친 현실 속의 가장 냉혹한 사실들을 직시하는 규율은 결코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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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 콜린스 저, 이무열 역,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김영사, 2002년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2011년 5월 28일 토요일

봄에 와서 봄에 간 사람 - 부지깽이

2011.05.27 09:12:23 (*.160.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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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이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는 나이를 잊습니다.  나도 잊습니다.   나는 저 지저귀는 새이며, 갓 피어난 분홍색 작약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봄이 가기 전에,  봄에 태어났다 봄에 떠난 바로 이 사람에 대하여 생각해 봅니다.   작은 퀴즈라고 생각하고 즐겨 보세요.

"우리는 그저 잠시 머물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 이유는 몰라요. 어쩌면 신의 섭리일 수도 있겠지요"
 (Each of us comes here for a short visit, not knowing why, yet sometimes seeming to a divine purpose) 
이렇게  말한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조금 더 힌트를 드리지요.  이 사람은 이런 멋진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길이 안보이거든 일단 주어진 일을 해라. 
신이 그대를 어느 곳에 데려다 놓든 
그곳이 바로 그대가 있어야 할 곳이다
위대함은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든 그것에 얼마나 많은 사랑을 쏟는가에 있다

올바른 것을 찾기 전에 한참을 기다려야할 지도 모른다
설사 몇 번의 헛된 시도를 하게 되더라도 용기만은 잃지 마라
실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되,
원하는 것을 포기하지는 마라

아주 훌륭하지요 ?  자기 경영의 정수를 들려주고 있지요 ?   그렇지만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알쏭달쏭하다구요 ?    그러면 이제 조금 더 풍부한 힌트를 하나를 더  드리도록 할께요. 이 사람은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 (우리가 왜 이 지구에 왔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매일의 삶이라는 시선으로 지켜보면,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이유가 하나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알 수도 없고 셀 수도 없는 무수한 영혼들과 연민이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나는 이미 죽었거나 아직도 살아 있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존하지 않고는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빚진 이 사람들에게서 받은 만큼 되돌려 주기 위해 나를 온통 바쳐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제 알게 되었다구요 ?  잘 되었군요. 
아직도 잘 모르겠다고요 ?  그럼, 할 수 없지요. 간단한 행적을 알려 드리지요.

이 사람은 독일의 울름에서 태어났지요.  유대인 아버지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의 뿌리 깊은 반유대적 정서 속에서 괴로워하고 신경쇠약에 걸리기도 했답니다.   나치독일 당시 미국으로 망명했으나 미국 역시 그가 마음 편히 머물 곳은 못되었답니다. 꽤 오래동안 공산주의자로 사상 검증을 받아 왔으니까요. 1921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가장 위대한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지요. 1979년 3월 14일 태어나 1955년 4월 18일 76세의 나이로 미국 프린스턴에서 죽었습니다.  평생 무신론자였으나 이 사람만큼 모든 곳에서 신을 느끼며 살았던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자신의 길을 따라 가다가  가뭇없이 스스로를 넘어 우주의 별이 된,   깊은 인생을 살다 간  이  사람은 누구일까요 ?

2011년 5월 26일 목요일

소로우의 세 개의 의자 - 승완

2011.05.24 10:51:57 (*.248.10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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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탁월한 고전인 <월든>의 저자이자 ‘19세기에 21세기적 환경 감각을 지닌’ 것으로 평가 받는 인물입니다. 젊은 시절 그는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통나무집을 짓고 홀로 살았습니다. 그의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었는데 소로우는 <월든>에서 이 의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집에는 세 개의 의자가 있다. 하나는 고독을 위한 것이고 둘은 우정을 위한 것이며 셋은 사교를 위한 것이다.”

여기서 고독은 자신과의 대화를 의미하고, 두 번째 의자는 벗과의 대화이며, 세 번째 의자는 그가 ‘방문객’이라고 부른 우연히 만난 사람과의 대화를 뜻합니다. 소로우는 한 사람을 ‘하나의 왕국’이자 세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세 번째 의자는 ‘세상을 위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듯합니다. 나는 소로우의 세 개의 의자를 ‘성찰’, ‘관계’, ‘세상’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월든>을 읽어보면 소로우는 이 세 개의 의자 중에서 첫 번째 의자, 즉 ‘고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자주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나는 고독만큼 친해지기 쉬운 벗을 아직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소로우가 홀로 지내며 고독이라는 벗과 함께 성찰한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외부 세계가 아닌 정신 세계를 탐험하기를 바랐습니다. 자연과 마찬가지로 정신 세계에도 대륙과 바다가 있으며 한 사람의 내면에도 그런 대륙과 바다가 존재한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 더미에 불과하다.”

고독과 성찰만이 내면 탐험의 유일한 수단은 아닙니다. 소로우 역시 스스로를 탐험하는 데 세 개의 의자 모두가 필요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성찰’, ‘관계’, ‘세상’이라는 세 개의 의자 중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을 가장 자주 사용할지, 그리고 어떤 순서로 배치할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 개의 의자 중 하나라도 빠지면 내면 탐험의 폭은 좁아지고 깊이는 얇아집니다. 

소로우가 자기 탐험을 권하며 인용했던 윌리엄 해빙턴(William Habingtoon)의 시가 떠오릅니다. 나를 들여다봅니다. 소로우의 세 개의 의자를 떠올리며 어떻게 스스로를 탐험할 것인지, ‘성찰’, ‘관계’, ‘세상’ 중에서 내가 놓치거나 무시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생각합니다.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여태껏 발견 못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윌리엄 해빙턴(William Habing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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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강승영 역, 월든, 이레, 2004년(개정2판)
* 홍승완 트위터 : @SW2123

2011년 5월 21일 토요일

이는 사라지고 혀는 남는다 - 부지깽이

2011.05.20 07:49:20 (*.160.3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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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商容)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 그가 병으로 눕자 노자가 찾아가 물었다. 
"선생님, 제자에게 남기실 말씀이 있으신지요 ? "
 "고향을 지날 때는 수레에서 내리거라"
 "바탕을 잊지 말라는 말씀이시군요"

"높은 나무 아래를 지날 때는 종종 걸음으로 가거라" 
"뜻있는 사람을 공경하라는 말씀이군요" 
 
상용은 입을 벌리며 물었다. 
"내 혀가 있느냐 ? " 
"있습니다"
"내 이가 있느냐 ? "
"없습니다" 
"알겠느냐? " 
"강한 것은 없어지고, 부드러운 것은 남는다는 말씀이군요."

"천하의 일을 다 말했느니라"
이렇게 말하고 상용은 돌아누웠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의 '한정록(閑情錄)'에 실려 있는 이야기를 조금 바꾸어 현대의 의미로 번역해 본 것입니다. 상용은 아마 노자의 스승이었던 모양입니다. 노자가 희미한 역사 속의 인물이니 그 스승은 더 감추어져 있었겠지요. 말은 그 뜻을 전하기 어려우니 상징과 비유로 가르쳐 준 모양입니다. 그냥 말로 했다면 싱거운 가르침이었겠지만 비유의 언어로 치환하니 가슴 속 깊이 각인되어 결코 잊을 수 없는 깨우침이 됩니다. 동양이 그 많은 모호한 비유로 글을 남긴 이유는 필설로 남기려는 순간 그 감동과 섬광이 사라지기 때문에 직접 설명과 묘사를 피하고 그 본질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깨닫는 사람은 깨닫고, 아직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은 시간을 보내 그 뜻이 자신에게 닿을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자기경영은 알아듣는 귀를 갖기 위해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마음이 열리면 귀가 트입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듣는다'라고 말합니다. 마음으로 듣는 연습으로 가장 좋은 것은 좋은 시를 읽는 것입니다. 시인이 필요 없는 것을 다 버리고 남겨둔 것을 보고 우리는 행간에 숨은 뜻을 찾아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때 시는 살아 숨쉬는 생명체가 되어 내 품에안겨 펄떡입니다. 그리하여 감탄을 공유하고 슬픔을 함께하고,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살아있는 것이지요.
적게 말하고 깊이 받아들이는 것을 시적 교감이라고 한다면 바로 이 지점에서 시는 자기경영의 정수와 만나게 됩니다. 자기경영이란 본질만 남기고 모든 비본질적인 군살을 덜어냄으로써 직접 마음에 닿으려는 치열한 수련이니까요.  불가에서 행하는 용맹정진의 공부인 선(禪)은 '문자에 기대지 않고, 직접 마음을 겨냥하는 정신'에 기초합니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나는 자기경영이란 선(禪)의 대중적 표현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은 치열한 자기 갱신이니까요.

2011년 5월 19일 목요일

100권 읽기 보다, 100만원 벌기. - 달팽이크림

2011.05.17 06:05:39 (*.111.2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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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모로 보면, 나는 공무원같다. 대학교수나 학교 선생님, 군대 장교를 직업으로 삼았으면, 어울렸을 것 같다. 무표정하고, 사무적이다. 공무원이나, 대학교수, 선생님이 무표정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수요가 보장된 직종에 종사한다. 고객의 비위를 장사하는 사람만큼 맞추지 않아도 된다.(요즘은 많이 바꼈다.)
아침햇살을 받으며, '골라, 골라' 외쳐대는 장사꾼 이미지와 나는 맞지않다. 나를 보는 사람들도 장사는 나와 어울리지 않다고 한다.
장사꾼 중에는 동물같은 감각으로 돈을 벌어내는 사람이 있다. 수완이 좋다고 말한다. 경기나 시장의 상황에 상관없이 매출을 올린다. 난 돈에 욕심이 없어보인다. 매출이 떨어지면, 안절부절하지만, 매출이 올라도 어느 정도 선에서 만족한다. 밑도 끝도 없는 욕심과 탐욕이 장사꾼의 기질이라면, 나는 아니다. 적당히 기분 좋게 벌면 그걸로 만족한다. 기분 내키는대로, 팔아도 그만, 안팔아도 그만이다. 
나는 왜? 장사를 시작했을까? 부모님이 장사를 하시는 덕에, 경제적으로 부족함 없이 자랐다. 부유했던 것은 아니지만, 사고 싶은 거 사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정도로 돈을 버셨다. 당시에는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하고 싶은 것을 '지금 바로' 할 수 있다면, 부자다. 적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싶을 때 못하는 쪼들림이 싫다.
의사집에서 의사 나오고, 판사 집에서 판사 나온다.부모가 어떤 업으로 돈을 벌었다면, 자식도 그 업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태진아, 김용건, 전영록, 나미, 김영하의 자녀들이 같은 업을 선택했다는 것은, 부모세대가 그들의 업으로 돈을 벌었다는 반증이다. 귀한 자식일수록 험하게 키우라고 하지만, 밥벌이에서만큼은 자식을 고생시키고 싶은 부모는 없다. 업을 잇는다는 것은, 암암리에 이런 논리가 있다. 일본인중에는 대학교수도 가업을 잇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다는 말을 곧잘한다. 가업을 잇기 보다는, 가업이 벌이가 낫기 때문이리라.
두번째는 트라우마때문이다. 집안이 폭삭 망한 적이 있다. 재산은 없어지고, 아버지는 장애인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 월세 받으러오는 집주인의 발소리, 무기력한 아버지, 아침에 먹다 남은 밥상, 담임 선생님의 편애, 혼자 집에서 먹은 도시락, 이것들이 나에게는 상처가 되었다. '돈이 없으면 죽는다'라는관념이 다른 사람에 비해 강한 것 같다. 돈이 없으면 필요 이상 움츠러든다. 매출이 작아도 자신이 없기는 마찬가지.
세번째는 돈버는 능력이 매력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돈은 거저 버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알아야 하고, 해박해야 하며, 자기를 관리해야 한다. 자기를 완성하는 일이 돈버는 일이다. 가지고 있는 자원을 이용해서 성과를 올린다는 것이 매력있다. 피터드러커도 이야기했듯이, 새로운 과업에서 필요한 것은 특별한 지식이나 능력이 아니다. 일에 집중하는 것이 전부다. 새로운 것을 배울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성과를 올리는 것이 좋은 공부다. 아무것도 새롭게 배울 필요가 없다. 책 100권 읽는것보다. 혼자 힘으로 100만원을 벌어보는 것이 삶의 진리를 진하게 느낀다.

여기서 100만원은 회사에서 월급으로 받는 100만원과는 다르다. 아무것도 없이, 맨바닥에서 100만원 벌기다. 상상만 해도 아득하지 않은가? 아무리 심오한 진리라해도, 책에서는 이런 느낌을 피부로 얻을 수 없다. 장사만큼 좋은 공부가 없다.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기는 하지만, 책과 두뇌,지성 부분이 과장된 면도 있다. 100만원 먼저 벌어서, 그 돈으로 필독서 100권을 사 읽는다면, 책이 전혀 다르게 읽혀질 것이다. 

장사가 나와 어울리지 않음에도, 장사를 하는 이유다. 책만 읽은 지식은 반쪽 지식이다. 어떤 일이든, 성과를 올리는 능력을 쌓을려면 예외없이 고통스럽다. 운동도 그렇고, 실무능력도 그렇다. 초반에 눈물이 쏙빠지게 당해야, 노련한 실무자가 된다.  고통이 없는 지식은 성과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 먹물은 필연적으로 비판적이 되기 때문이다. 비판적으로 말해야, 똑똑해 보이고,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증명할 수있다. 

장사에는 성장에 필요한 영양소가 골고루 있다. 고객의 거절, 직원들의 배반, 고만고만한 매출. 싸한 느낌. 홧병. 반대로, 매출이 수직상승할 때 골을 때리는 느낌, 가르쳐줘도 모르는 나만의 노하우, 자유로움등.
 
책을 읽지말라. 책에는 길이 없다. 자기 길이 맞다고 우겨대는 안내자만 가득이다. 몸으로 수행하다. 장사로, 사업으로 성장한다.

2011년 5월 17일 화요일

당신의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 - 문요한

“우리의 예측은 대단히 정확합니다. 결국 전문가는 남들과 다르게, 훨씬 더 전략적으로 연습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실패해도 운을 탓하거나 자기 자신을 비하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실수를 교정할 수 있는 전략이 있습니다.”

- 대니얼 코일의 <탤런트 코드>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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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나 취미로 무언가를 배워보면 꼭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다고 해서 그만큼 실력이 늘어나지는 않습니다. 그럴 때는 흥미나 의욕을 잃기 쉬워 그만두기 쉽습니다. 하지만 사실 실력의 향상을 그래프로 나타내면 쏟는 시간에 비례해서 직선적으로 실력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계단식에 가깝습니다. 즉, 얼핏 보면 노력을 해도 실력이 늘지 않는 답답한 시기가 지난 뒤 어느 순간 도약이 이루어지고 또 다시 정체기를 겪다가 다시 도약하는 계단식 사이클이 반복되는 셈입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배울 때는 이러한 실력향상의 코스를 감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꼭 시간과 노력만큼 실력향상이 나타나지는 않습니다.  

‘10년 법칙’으로 유명한 심리학자 앤더슨 에릭슨에 따르면 세계적 수준의 운동선수, 예술가들을 조사해보니 그들이 많은 훈련시간을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문성의 본질적인 차이를 설명해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통상 하루에 3~5시간 정도의 연습을 하는 것이었지만 훈련의 질이 달랐습니다. 핵심은 단순 반복식의 훈련이 아니라 내적목표를 세워 난이도를 높이고 점진적 과부하를 줌으로써 집중과 내적긴장을 유지하는 가운데 ‘실전과 같은 연습’을 하는 것에 있었습니다. 생각 없이 천 번, 이 천 번씩 횟수를 늘려가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각성된 가운데 목적의식이 분명한 훈련을 해 온 것입니다. 결국 그는 '10년 법칙'이라는 양적표현과 달리 최고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얼마나 강박적으로 심층연습에 몰두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운전을 10년 이상 혹은 1만 시간 넘게 했다고 뛰어난 운전 실력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초기에만 어떻게 운전하느냐에 대해 신경을 썼을 뿐, 운전이 익숙해지고 나서는 그저 습관적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을 하면서 전문성이 향상되지 않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처음에만 바짝 긴장하고 일을 배웠을 뿐, 어느 틈에 자동화된 프로세스에 따라 습관적으로 행동하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개인의 문제와 함께 체계적인 훈련 프로그램을 갖추지 못한 조직의 문제이겠지요.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흔히 위기와 각성의 순간을 만나지만 이를 계기로 심층훈련으로 이어가지 못하면 마음 역시 옛마음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은 다반사입니다.   

실력이나 마음이 향상되지 않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이 하고 있는 훈련의 방법과 질을 살펴보세요.   


- 2011. 5. 18.  '당신의 삶을 깨우는' 문요한의 Energy Plus 483호-

마음 근육을 키우는 '3초 법칙' - 예병일 칼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치 쓰레기차 같아요. 절망감, 분노, 짜증, 우울함 같은 쓰레기 감정을 가득 담고 돌아다니거든요. 쓰레기가 쌓이면 자연히 그것을 쏟아버릴 장소를 물색하게 되지요. 아마 그대로 내버려두면 그들은 당신에게 쓰레기를 버릴 거예요. 그러니 누군가가 얼토당토않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더라도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세요. 그냥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고는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세요. 제 말을 믿으세요. 틀림없이 전보다 더 행복해지실 겁니다." (36p)
데이비드 폴레이 지음, 신예경 옮김 '3초간' 중에서 (알키)

살아가면서 남의 이야기에 상처받고 마음 속 깊이 새겨두는 사람이 많습니다. 남의 말에 신경을 쓰느라 자신의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마음 근육'이 거의 없는, 행복이나 심적 평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입니다.
 
저자는 '3초 법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감정적인 공격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는데 대개 3초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므로 이 3초를 현명하게 관리하라는 의미입니다. 무엇보다 "성질을 부리는 상대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를 고민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즉 분석하지도 말고 심사숙고하지도 말고 곱씹지도 말고, 그저 철저히 무시하라고 저자는 조언합니다.
 
그는 20년 전 택시 뒷좌석에 앉아 있다가 기사에게 이 교훈을 배웠습니다. 그랜드센트럴 기차역을 향해 가고 있는 택시 앞에 검정색 차가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주차구역에 서 있던 차였습니다. 택시기사는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간신히 3센티미터 앞에 멈춰섰습니다.
그런데 조금전 큰 사고를 낼 뻔했던 남자가 거꾸로 삿대질을 하며 기사에게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가 놀란 건 그 때였습니다. 기사가 상대 운전자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손을 흔든 것이었지요.
 
그가 "방금 왜 그러신 겁니까? 저 사람이 우리를 죽일 뻔했잖아요"라고 따지자, 택시기사는 위에 소개해드린 말을 했습니다. 누가 얼토당토않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더라도 기분 나빠하지 말고, 그냥 미소를 지은 채 손을 흔들어주고 다른 일로 주의를 돌리라는 겁니다. 그게 행복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이지요.
 
경기 중 상대에게 고의적인 반칙을 당해 넘어졌을 때 스포츠 선수들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흥분해서 화를 내며 거칠게 따지는 선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로 벌떡 일어나 다시 경기에 임하는 선수도 있습니다. 인간이니 쉬운 일은 아니지만, 대개 일류 선수들은 후자가 많아 보입니다. 아니 그래서 일류 선수가 되었을 수도 있겠지요. 다른 사람의 감정 공격에 기분 나빠하지 않고 즉시 다른 일, 즉 '경기 자체'로 주의를 돌릴 수 있다는 것은 선수로서 매우 큰 장점일테니까요.
 
어디 스포츠 세계에서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인생에서도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긍정적이 생각을 하려는 노력을 통해 '마음 근육'을 키워서, 부정적인 감정은 무시하고 대신 나에게 중요한 대상에 집중하며 사는 것이 성공과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예병일의 경제노트 - 트위터 : @yehbyungil / 페이스북 : www.facebook.com/yehbyungil

책을 출판해 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 Alvar

안녕하세요

저는 28, 대기업 3년차로 재직하고 있는 회사원입니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을 읽고 용기를 내어 편지를 드립니다.

제가 원하는 삶은, 새하얀 백사장 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망고 쥬스를 마시며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쓰는 것입니다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박에 ‘꿈 깨라’ 또는 ‘휴가 내고 3 4일 동남아 갔다와’ 라는 답변을 주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행복한 삶은 365일 중에 3 4일만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요?

그들을 위한 기행문을 쓰고 싶습니다. '행복하게 살아도 돼라는 주제로.
요즘 서점에 나와 있는 책들을 보면직장인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한‘여행서’는 많이 있지만 어떻게 해서 그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지그 전에 어떤 감정을 느껴서 떠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는 것 같습니다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훨씬 더 많은 생각을 했었을 텐데도 말이죠.

제 책에는 공감과 작은 용기를 적어내고 싶습니다. 

저희 세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먹고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세대입니다.
20대가 본 앞 세대의 모습은 IMF세대였던 아버지였고직장이 없으면 당장 먹고 살게 없어진다는 처절한 학습효과는 입사에 목을 매달게 하였습니다
온 몸으로 몸부림 쳤던 ‘취직’을 해결해 내면 회사에서는 그야말로 ‘낀’ 세대입니다나이 많은 계약직들은 신입 정직원을 못마땅해 하는데다가기존의 직원들은 환영은 커녕 목에 턱까지 찼던 본인들의 일을 신입에게 넘겨주기에 급급합니다.

20대는 반문합니다‘내가 뭘 잘못했는가’에 대해서.
'사회에서 시키는 것을 다했는데 나에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인가지금까지 참고 기다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나?' 에 대해서뒷통수를 제대로 얻어맞은 기분이 듭니다옳다고 말해지는 삶을 살았는데그 끝은 막다른 골목이었습니다. 그제서야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고민을 털어놓으면,  선배나 부모님은 '그만둘거면 다른 좋은데 구하고 나가' 라는 말을 던지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직장을 구하는게 아닌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뭐지?' 라는 고민을 할 물리적인 '시간' 입니다.
왜 우리에게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시간이 없는 걸까요.
한 번뿐인 인생을 불행하게 살면서도 바꿔볼 시간조차 한 번 가져보지 못하는 걸까요.
수백대 1의 경쟁으로 겨우 얻어진 안정된 밥 그릇을 깨고, 굶어 죽을 지도 모르는 현실에 다시 나가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제가 어깨에 져 보고 싶습니다이 세대의 고민하는 수십만 20대 직장인의 고민을 제가 어깨에 얹고 떠나보고 싶습니다이 회사를 피하기 위해 다른 직장을 구하고 나가는 것이 아닌나의 꿈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한 여행에 대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제가 끝내는 그 책의 끝이 현재보다 행복할지불행할지돈을 더 많이 벌지배고픔의 처절함으로 추락할지 지금의 저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의 궤적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좀 더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 입니다. 제가 더 행복해 진다면그들은 그 길을 따라올 수 있을 것이고, 제가 만약 지금보다 불행해 진다면 그들은 그런 실수를 피해갈 수 있는 것이겠죠.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언제나 ‘FOLLOWER’의 길을 걸었다고 생각합니다안정적이고 편안한
길입니다그러나 지금 이순간부터는 ‘PIONEER’의 삶을 살고 싶습니다직장인들에게 본인의 꿈을
고민해 볼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우리 너무 두려워 하지 말자 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20대의 고민과 방황을 출판해 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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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4 22:27:07 (*.150.178.75)
Alvar
안녕하세요. 이 글을 쓴 회사원입니다.
제 글을 출판해 줄 곳을 찾기 위해서 일단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초안이나마 보여드리고 앞으로 직접 출판사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아는 데가 없어서 일단은 구글에 출판사라는 글자를 입력하고 나오는 회사 부터 방문해야 할 것 같네요 ^^;
헌데 제가 쓰는 글의 앞 장에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소개하면서 구본형 선생님의 책 이야기가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허락을 받고 써야할 것 같아서요.. 혹시 구본형 선생님과 연락이 닿으시는 분 있으신가요? 혹시 아시는 분이 있으시면  연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무모하지요? 하지만 젊은 혈기로 예쁘게 봐주시면 좋겠어요..꼭  좀 부탁드릴께요!!!
010-4211-1475 입니다.

경영학과 역사학 - 어느 고등학교 3학년생과 부지깽이님의 문답

2011.03.13 00:11:28 (*.133.53.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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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제주도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3학년 학생입니다. 저의 고민은 바로 경영학과 역사학을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을까 입니다. 구본형 소장님께서 경영학과 역사학을 복수전공 하셨다고 하셔서 이 곳에 글을 올려봅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는 '역사'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나라의 역사뿐만 아니라 역사적 인물, 그리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시대의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의 일화까지 모두 관심을 둘 정도로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역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왔고 앞으로도 역사와 관련된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생각이 조금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바로 역사만이 제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전부터 저의 진로에 고민이 많았는데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가 대학을 갈 때가 되니 이제는 확실히 마음을 잡아야 되겠다고 생각했고 그러기 위해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역사, 토론, 여행, 사람들과의 만남, 시사 등등. 그리고 그 끝에서 이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 과를 찾아보게 되었고 우연히, 의외로 '경영학'이 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을 우선 많이 만나야하는 학문이고, 사람들을 설득할 때는 '토론'에서 깨우친 방법으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여행'도 즐기며 변화하는 세상을 꿰뚫고 있어야하므로 '시사'적인 지식 또한 발휘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제가 어렸을 때 꿈을 꾸었던  '역사'와는 쉽게 결합시킬 수 없었습니다. 

나름대로의 고민을 통해 얻은 조그마한 깨우침은 바로 역사학을 통해 이제껏 세상이 변화한 모습을 알고 그를 교훈삼아 미래를 계획하는 경영학에 그 교훈을 적용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는 도무지 생각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아직 구체적인 계획도, 전문적인 자료도 제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도움을 구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저는 이성적으로 사고하지만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경영' 또한 단순히 기업 등을 넘어서 나라와 세계도 경영하는 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런 제게 도움을 주시기 바랍니다.

***


부지깽이
옛날 사람들은 살던 곳을 떠나 친구 몇사람들과 함께 작은 나라를 하나 건설했지.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세상 하나를 만들어 낸 것이지.  주몽이 쫒겨나 고구려를 세우듯이.   요즘 사람들은 빈땅을 찾아 나라를 세울 수는 없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시작하지.  그래서 자신의 회사 하나를 만드는거야.   이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내 세상 하나가 열리는 것이다.     역사는 꿈의 경영이지


   인류의 역사는 꿈의 경영에 관한 기록과 해석이야.   모든 위대한 성취들도 누군가 그것을 의도하고 만들어 내기 전 까지는 불가능한 꿈들이었지.    너는 어떤 네 세상 하나를 가지고 싶으냐 ?     사람들은 어떻게 그 세상을 만들어 내었을까 그 사례를 찾아내는 것이 역사지.  그 레슨을 스스로에게 적용하여 실제로 네 세상하나를 만들어 가는 것은 경영이야.   너의 강점을 알아내고, 무엇을 하고 싶은 지 그 열망을 알아내고, 누구와 함께 그 일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사람들을 모아들이고, 또 어떻게  그들의 에너지를 활용할 수 있는 지, 그리하여 어떻게 함께 꿈의 비즈니스를 이루어 낼 수 있는 지 실험해 보는 것이 경영이지.   역사는 지혜고 경영은 실천이다.    아마 그럴껄.  어찌 생각하는가 ?  

2011년 5월 15일 일요일

단상 64 - 인연의 길잡이들 (서원)

인연의 길잡이들.jpg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마음은 매번 설레는 마음을 갖게 한다. 또 하나의 결심을 가지고 행동에 옮길 때 과연 그것의 결과는 어떻게 될까 기대가 되기도 한다.

새벽 수련을 통해서 무언가 이루어 보겠다는 여정이 300일차 마지막 차수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그 여정에 동참한 이들을 위한 킥오프의 모임. 한 사람 한 사람의 꿈들이 모였다.

영어, 달리기, 독서, 글쓰기, 내면의 지적 탐구등 자신의 달성할 목표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것을 이루기 위한 주인공들이 참석 하였다. 학교 선생님, 직장인, 가정주부 등 다양한 직업들과 개인의 사연들이 있지만 함께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하나.

자신의 천복(天福)을 찾고 그것을 심화 시키는 것이다. 그래서였던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참으로 오랜만에 긴 밤을 하얗도록 새우고 말았다. 아마도 서로를 채워주는 꿈들의 인연이 그날의 시간을 그토록 오래도록 연결시켜 주었나 보다.

살아오면서 겪어 보니 나란 인간이 그렇게 미덥지 많은 않다. 그래서 그런 약함을 알기에 이런 과정에 참여 하여서라도 함께하는 분들의 격려와 지지로써 나약함과 의지박약을 떨쳐 버린다.

떠올려 보니 세상사 모두가 내가 잘나서 혹은 저절로 혼자서 된 것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크든 작든 소소한 갈래들이 모여서 현재의 나를 형성 하였다. 내가 성장해온 과정도 그러하였다. 그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수많은 만남과 인연의 길잡이들이 있었다. 학교 선생님, 친구, 회사 동료, 그리고 …….

어린 시절. 몸의 허약함으로 방과 후 집에 가는 도중 너무 지쳐 어느 점포 앞에서 쭈그리고 앉아 있을 때, 문을 열고 나와 따뜻하게 건네는 누군가의 보리차 한잔으로 나는 힘을 얻었다. 밤을 새운 나의 미술 작품에 참 잘했어요! 파란 도장을 찍어주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무한한 기쁨과 행복감을 만끽 하였다. 그때 나도 잘하는 것이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처음으로 가질 수 있었다.

초등학교 교생 선생님. 그녀로 인해 여성 이라는 존재감의 중요성에 대해 알게 되었다. 덕분에 어수룩한 내가 결혼을 하여 토끼 같은 마눌 님이랑 그나마 이렇게 싸우지 않고 살고 있다. 당시는 그렇게도 싫어했었지만 음악을 전공하신 담임선생님. 그로인해 처음으로 트럼펫이라는 악기를 접하게 되었다. 내 인생 언제 다시 그런 기회가 있으랴.

파격 이었다. 교과서가 중심이 아닌 학생들의 궁금한 점을 칠판에 가득 적어놓고 응답을 해주셨던 국민윤리 선생님. 어머니란 타이틀의 숙제에 대해 A3 용지 앞뒷면을 빽빽이 채워 과제를 열심히 제출한 나에게 과분할 만큼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아마도 내가 책을 출간케 된다면 이의 마리츠버그 역의 시발점은 여기였었으리라.

담임선생님은 내가 공부를 잘하는 줄 아셨는 모양이다. 기대에 못 미쳐 죄송했지만 처음으로 월례고사때 전체 석차에서 중간으로 오르게 하였던 화려한(?) 전적을 만들어 내게 해주셨다. 기술 수업시간. 시험을 치루고 나면 틀린 개수만큼 매질을 하였다. 그것도 교단 앞으로 나와서 아이들의 새까만 눈동자들이 쳐다보는 가운데 바지와 팬티까지 내리게 하는 매질을. 어찌 보면 비인격적인 행위로 볼 수 있는 그것으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그 덕에 나는 다른 사람에게 그런 모독을 주지 말아야 하겠다는 결심이 서게 해주었다.

고등학교 3년을 함께한 아이들. 인생 전반부의 쓰레기들이 모였다. 연합고사 시험에 떨어지고 갈 데가 없어 나처럼 모인 삼류 인생들. 하지만 거기에도 장미꽃은 피었다. 이렇게 인생을 살면 안 되겠다는 독한 결심과 각오로써 깡을 키워준 그들.

대학교의 생활. 동아리 선후배들을 통해 낭만과 한없는 자유감을 만끽할 수 있었다. 내 인생 그렇게 원 없이 놀아 보기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신학교에서의 동기들. 짧은 기간 이었지만 사람들을 위해 세상을 위해 헌신하려는 꿈들을 가진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중에는 신부가 되거나 혹은 나처럼 결혼을 한사람도 있지만 함께 기숙사 생활을 하였던 그들이 있었기에 그나마 아직도 나는 작은 신앙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간다.

직장에서의 영업부 첫 상사. 당신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었지. “이승호. 이렇게 직장생활 하는 데에 눈치가 없고 수식이 어두워서 영업부 생활을 제대로 하겠어?” 나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대놓고 나를 깨는 그 상사로 인해 나는 더욱더 기가 죽었다. 매출에 대한 증원에 대한 부담감이 백배가 되어 나를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게 하였다. 사표를 언제 낼 것인가 그 생각만 하고 있었지만 덕분에 그런 생활을 통하여 그나마 사회에 대한 조직에 대한 적응력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었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대단한건 나 자신이 포기를 안했다는 점.

다양하게 스쳐간 그리고 앞으로도 만나게 될 길 위의 도반(道伴)들. 그들의 관계 속에 나는 성장이 되고 배운 것의 보시(布施)를 통해 세상은 돌아간다. 거기에 각자 생김의 역할이 있고 쓰임새가 있다. 그 속에 바람이 있다면 그들의 진면목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와 포용력이 있으면 좋겠다는 것.

자기의 그릇대로 살아가는 삶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2011년 5월 10일 화요일

지적 Race - 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 강정자

2011.02.20 19:46:05 (*.128.7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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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강정자-

3억대 1이라는 전대미문의 경쟁률을 뚫고 잉태된 순간우리 인간은 생물적으로 존재하게 된다그리고280여 일 동안을 암흑과 원인을 알 수 없는 진동 속에서 보낸 이후에 어머니의 자궁 밖으로 탈출한다누군가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영아기를 지나 유년기를 거치면서 인간은 점차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형태를 갖추게 된다유전적으로 물려받은 태생적인 습성이 근간을 이룬 가운데 각종 암묵적명시적 교육과 자극이 한데 어우러져 한 사람으로 점차 완성되는 것이다그러나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들의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이미 어느 정도 ‘바람직’하다고 정해놓은 틀과 방향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역사 속에서 승자로 부상한 이들이 기록한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제도권에 연착륙한 이들이 ‘성공’으로 규정한 길을 큰 고민 없이 따라간 이들은 정신적으로 미숙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생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었는지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어떤 새로운 가치를 더해나갈 수 있는 것인지는 그들에게 하등 중요하지 않다그들에게는 오로지 콘크리트 건물을 하나 더 사들이고보통 사람들이 선망하는 타이틀을 거머쥐는 것이 인생의 절대 목표로 자리 잡게 된다세상이 제공할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정해져 있으니 내 주변 동료다른 이들과의 경쟁을 통해서 내가 좀 더 많은 몫을 차지하면 될 뿐이다그들은 불공평한 사회에서 어떻게든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런 전략을 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항변한다그런데 놀랍게도 자신들이 목표로 삼았던 물질적 부를 쟁취한 후에도 그들은 만족하지 않는다이미 더 많은 껍데기를 긁어모으는 것이 일생일대의 목적으로 치환되었기에 처음 정했던 목표는 끊임없이 수정되고 높아져만 간다그 높은 곳으로 올라간 이후의 삶은왜 그렇게 높이 올라가야만 하는 거지거기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이런 질문을 던지면 '한가하게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답변이 되돌아온다이런 삶을 영위하는 이들에게는 제아무리 화수분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내적인 공허함을 채우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다.

한편이런 목적 없는 뜨거움조차 갖지 않고 여유와 느림을 혼동하면서 어제와 똑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가는 이들과 대조적으로그들은 나비는커녕 누에고치가 될 생각도 없고 그저 내 손에 주어진 이파리를 조금씩 갉아먹는 것에 만족하면서 산다그들은 자신들이 쟁취하지 못한 것들‘부지위,권력’과 같은 것들을 배척한다는 태도를 취한다그러나 그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오히려 그들 또한 세속적인 이런 가치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금세 알아챌 수 있다그들은 속세에서 가치를 두고 있는 항목들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과격한 언행을 선보이고는 하는데이와 같은 격렬한 반응은 그들의 뇌리에 이런 단어들이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지를 반증한다그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기보다갈망하지만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로부터의 비겁한 도피자이다그들은 일견 세상의 모든 지혜를 깨달은 듯이 이야기를 늘어놓지만실상은 자신과 만물의 진일보를 위해 어떠한 가시적인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 현실 안주자일 뿐이다그들은 자신들이 주류로 편입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불만과 불완전한 주변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표출하기에 급급하다.

하지만 이렇게 아집과 독단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범인들이 새롭게 태어나는 순간이 있다물론 생의 마지막 숨결이 다할 때까지 이런 만남을 누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하지만 변화하겠다는 굳은 의지와 고난을 걸림돌이 아닌 성장을 위한 디딤돌로 삼겠다는 전향적인 태도로 가득한 이는 자신의 삶의 궤적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한 번 뿐인 소중한 삶을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각오가 서 있는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지는 자극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때를 기다린다이러한 삶의 변혁은 ‘줄탁동시’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겠다는 전향적인 열정으로 똘똘 뭉친 이가 삶의 대변혁을 이끌 동인을 만나면 드디어 갇혀있던 알에서 깨어나 비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변하게 하는 것일까그들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책을 떠올릴 수 있겠다가슴을 쿵쾅거리게 만드는 사람일 가능성도 높다과거의 영광과 상흔의 모습을 품고 있는 고색창연한 건물도 빼놓을 수 없다심연의 고통을 자아내는 슬픔 앞에서 유영하고 있는 또 다른 자아에 맞닥뜨릴 때도 진화가 이뤄진다그들의 행동과 심리적인 변모를 초래하는 원인은 다양하지만이러한 마중물을 접한 후에 보이는 변화의 양상은 대동소이하다무엇보다도 그들은 지금까지 안고 살아온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기성세대가 자의적으로 규정한 부정적인 단어들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사회에 무조건적으로 동화되기보다 자신만의 색채를 띠고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용기 있게 추구할 수 있게 된다온 세계를 포용할 수 있을 만큼의 너그러움도 갖추게 된다.

그들은 ‘죽음’이라는 최종 종착지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있다그러나 그 순간이 언제 도래할지는 알 수 없기에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여기며 최선을 다한다그들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내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사람내가 정열을 쏟고 싶은 대상’을 수시로 떠올린다그리고 다시 반복되지 않는 소중한 매순간을 즐기면서행복할 권리가 있는 자신을 위해 환한 미소와 긍정적인 생각을 선물한다이들은 온 만물을 창조한 절대적인 존재가 자신 인생의 씨줄과 날줄을 이미 정해놓았다고 믿는다따라서 자신의 힘으로 바꿀 도리가 없는 고난 앞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한다‘역경’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성공’이나 ‘행복’과 같은 말의 대척점 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는 것이다시련에 직면해 힘들다고 불평하기보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고자 노력한다이런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절망하지 않는다대신 어려운 상황을 안고 살아가는 지혜를 배우고자 한다이렇게 현명하게 대처한 결과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삶의 촛불은 쉽사리 꺼지지 않는다힘든 시기가 지난 후에 오히려 그네들의 삶의 불길이 예전보다 더 큰 횃불로 바뀌어 있는 것을 목도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나는 감히 지금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고 싶다작년 이맘때 나는 삶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어리석은 이였다불행이라는 달갑지 않은 손님이 기다렸다는 듯이 연거푸 나를 방문했다나는 손사래를 치면서 그들을 떼어내고 싶어 했으나 그들은 그럴수록 내 곁에 더욱 가깝게 다가와 떠날 줄을 몰랐다어느 순간 나는 그들과 함께 사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그들을 버릴 수 없다면 그들을 받아들이는 내 태도를 바꾸기로 한 것이다나는 지난 1여 년간 책을 통해 400여 명 이상의 사람을 만났다그들의 삶의 모습은 참으로 다양했다그리고 그들이 삶을 바라보는 각도로 천차만별이었다그런데 내가 만난 이들 중 내 육신과 영혼의 갈급함에 대답해준 이들의 지향점은 한결같았다끊임없는 ‘사랑과 나눔‘나는 더 이상 나만의 영달을 꿈꾸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었다나는 예전의 유치한 삶에 마침표를 찍었다그리고 나의 진정한 성장을 위한 자양분을 찾아다녔다물론 내가 사회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이 좇는 가치에서 완전히 초월한다는 것은 풀기 힘든 숙제였다하지만 나는 최소한 치열한 고민을 하면서 깨어 있는 정신으로 살고자 노력했다예전에는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것들에 물음표를 찍거나 최소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앎과 삶의 일치를 또 다른 목표로 하여 오늘 배운 만큼 행동으로 옮겨 ‘생각과 말과 행동이 바른 이’가 되고자 했다.

내 꿈은 점점 원대해졌다처음에는 ‘나만이라도 마음껏 행복을 누리자’로 시작했다그런데 내가 어느 정도 질적인 성장을 이뤘다는 생각이 들자 ‘내 가족이 나와 함께 하며 한 번 더 웃었으면‘하는 소망이 자연스레 생겼다그리고 이 대상이 끝도 없이 확대되었다친지들로회사 동료로나를 알고 있는 이들로나와 말을 나누거나 스쳐 지나가는 모든 이들로지금도 이런 내 꿈은 무한대로 확산하는 중이다삶을 내밀하게 설계하고 기쁨의 정수를 맛보는 것다른 이를 짓밟고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공정한 게임의 룰 내에서 주변 이들을 독려하면서 함께 가는 것마음이 가난한 자들과 함께 걷다 필요하면 도약하고 비상하는 것주입된 가치관과 사고방식이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끊어버리는 것어제의 거푸집에 머물러있지 않고 내 가치를 계속 높이는 것내 삶의 지향점이다혹시 아직 새롭게 태어나지 못한 이가 있다면 내 손을 잡고 이 매력적인 향연에 동참하는 것이 어떠한가?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법 -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포리스트 카터 저) - 홍승완 해설

이제 나는 여섯 살이 되었다. 할머니에게 세월이 흘러가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것은 아마 내 생일이었을 것이다. 이제 할머니는 거의 매일 밤 등잔불을 밝혀놓고 책을 읽어주셨으며 사전공부를 계속 시키셨다. 나는 이제 B항목까지 진도가 나갔다. 그런데 사전의 한 페이지가 찢겨지고 없었다. 할머니는 그 페이지에는 별로 중요한 단어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번 개척촌에 갔을 때 할아버지는 도서관에서 사전 한 권을 샀다. 75센트나 했다. 할아버지는 전부터 이런 사전을 가지고 싶었노라고 하시면서 그 돈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그 안에 든 단어를 전혀 읽지 못하시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가 다른 용도로 그 사전을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나는 할아버지가 사전에 손대시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포리스트 카터가 쓴 자전적 소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그는 체로키 인디언인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냅니다. 포리스트의 할아버지는 그에게 ‘작은 나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작은 나무는 두 분에게서 체로키족의 삶의 방식과 철학, 그리고 그들의 지혜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서서히 체득하게 됩니다.

위 이야기에서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를 위해 사전을 구입했습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할아버지의 마음이 선명합니다. 할아버지는 작은 나무에게 사전을 주거나 이것으로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은 할아버지가 ‘작은 나무’에게 주는 선물이고, 할아버지는 인디언이 선물을 주는 방법을 따랐습니다. 포리스트는 이 방법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인디언은 절대 무슨 뜻을 달거나 이유를 붙여서 선물하지 않는다. 선물을 할 때는 그냥 상대방의 눈에 띄는 장소에 놔두고 가버린다.

선물을 받는 쪽은 자신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받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자신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선물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거나 하는 짓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한다.”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맑아졌습니다. 이 책 속의 이야기들에는 여백이 존재합니다. 어린 작은 나무의 시선으로 보고 겪은 것을 전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적당하게 비워진 이야기와 교감하다보면 어느새 정신이 평온해지고 마음은 맑아집니다. 삶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할 수 있지만 삶을 사는 건 간단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삶에 대한 여백이 있는 이야기가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그런 이야기가 복잡한 삶을 적당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수 있도록, 그리하여 본질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깊은 삶을 위해서는 여백이 필요합니다. 책과 나누는 대화에도 생각할 수 있는 여백과 음미할 수 있는 여백이 필요하고, 우리 사이에도 그런 여백이 필요합니다. 마음과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그렇고, 말과 글을 나눌 때도 여백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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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리스트 카터 저, 조경숙 역, 내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 아름드리미디어, 2008년(4판)* 홍승완 트위터 : @SW2123